계요 병원에 입사하여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느덧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푼 기대감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1987년 봄, 계요 병원(당시 안양신경정신병원)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본 모습은 언덕 위에 병원이 하나가 서 있었고, 주변은 인가가 별로 없는 논밭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이란 생각 때문이었는지 을씨년스럽고 적막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병원 기숙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한밤중에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합창 소리...
비 오는 날에는 기숙사 큰 창을 통해 들려오던 빗소리의 낭만...
기숙사 앞 솔밭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즐겼던 기억...
친목을 다졌던 고천초등학교 뒤 부대찌개집,..
직원 간 단합과 친목을 위한 수련회, 체육대회, 야유회, 송년회, 회식을 함께하며 행복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1987년 처음 근무지는 본관 3병동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말 순수했던 환우들의 눈빛과 동시에 약물 부작용으로 힘들어했던 모습입니다. 침을 많이 흘리고, 목이 돌아가고, 종종걸음을 걷고, 혀가 나오고, 눈이 올라가고, 허리가 뒤로 꺾이고, 안절부절못하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사를 놓곤 했었습니다. 면회하고 나면 가족들이 상태가 더 나빠졌다는 불만을 토로하여 약물 부작용임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었습니다.
또한 병동 로비에서 노래 가사가 쓰여 있는 괘도를 넘기며 합창하던 노래 교실,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동작을 짜온 에어로빅 등 간호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했었고, 병원 행사로 병동별로 장기자랑, 송년회를 하여 병동 환우와 직원들이 같이 연습하고 행사를 참여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1990년 중반 계요 병원 본관 8층과 본관 6층 일부에 청소년센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센터가 시작된 후 중간에 치료진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입원한 청소년 환자들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과외 및 학습 시간을 운영했으며, 몇몇의 환자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명실상부한 진정한 청소년 치료가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물론 사건·사고도 많았습니다만, 병원에서 치료받고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또한 치료진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교육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족 교육은 한마디로 감동입니다.
정신과 치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가끔 전화해도 목소리만 듣고 안심하는 가족들...
외래에서 마주치면 반가워하며 인사하는 가족들... 퇴원했지만 지금도 연락하는 가족들...
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실무를 통해 얻을 수 있었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그 경험들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계요 병원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저의 인생 반 이상을 이곳 계요에서 보냈으니 나의 개인 역사에는 계요 병원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과 갈등도 있었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더 크게 남는 것은 어려운 고비마다 격려와 응원을 해주셨던 계요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계요 병원은 1994년 신관이 증축되고, 2002년 노인 병원을 개원하는 등 입사 이후 35년 동안 쉬지 않고 성장해왔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계요 병원에서 3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고, 성장하는 병원에 발맞추고자 나름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요 병원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시간 속에서 나도 함께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35년 동안 성장할 수 있게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계요 병원에서 함께 성장했던 만큼 남은 시간도 병원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