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부터 정신과에서 근무하길 바랐다. 그러나 처음 입사했던 대학병원은 정신과를 배울 수 없는 환경이었고, 이에 매우 큰 좌절감을 느꼈다.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모교 교수님께서는 정신과로 유명한 병원을 알려주셨고, 머지않아 그 병원에서 면접을 보았다. 그렇게 나는 계요 병원의 간호사가 되었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연고 없는 경기도에서 첫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내면적으로도 겨울을 맞이했다. 당시 대학병원을 그만두면서 부모님께 큰 실망을 안겨드려 연락이 끊겼었고, 근처에 만날 수 있는 지인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던 건 병동 수 선생님 덕분이었다. 수 선생님께서는 내가 업무 관련 질문을 드릴 때마다 온화한 말투로 정확한 답변을 주셨고, 바쁜 날에는 “정말 고생했어요”라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으셨다. 더불어, 대상자분들을 대할 때는 항상 온기를 머금으셨는데, 이는 내가 치료자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중심 역할을 해주었다.

몇 개월 후, 나는 타 병동으로 발령받았다. 이때는 원래 근무했던 병동에 정이 많이 들어 종종 그리움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새로운 병동에서도 좋은 수 선생님을 만났고, 시간이 쌓이자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마음이 크게 열렸다. 이는 무엇보다도 병동 직원을 향한 수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노고 덕분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계요 병원에서 세 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돌이키며 알아차린 사실이 있다. 이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인복이 없었다면, 그 순간을 매우 힘겹게 보냈을 수도, 혹은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매우 빈번함에도 내 곁에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제 나는 이러한 행운에 보답하고자 한다. 정신과적 어려움으로 입원한 대상자분들의 고통을 줄여드리고, 회복으로 향하는 길에 보탬을 드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그들을 신뢰하며 진심으로 손을 내밀 것이다. 이로써 그들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럽지만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