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3월 1일, 간호 학생 시절 정신과 실습을 하면서 무섭게만 느껴졌던 환우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며 정신과 병동에서 일할 때 내가 생각하던 간호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란 확신에 과감히 정신과를 선택하였다. 대학병원을 가야지 정신병원이 무슨 말이냐며 추천서도 안 써 주시고 화를 내시던 지도 교수님…. 정신병원 다니면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한 채 정신병원 면접을 보고 입사를 결정하였다.

주위가 깔끔하게 단장된 잔디밭과 정원에 가꾸어진 예쁜 나무들, 미니 골프 연습장, 테니스장 등이 어린 학생인 나에게는 어설프게도 '이 정도 관리하는 병원이면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내가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결혼을 하면 직장을 사직해야 하고 정신병동에서 임신하여 근무하는 것은 생각조차 허용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비밀리에 결혼한 간호사가 생겨 이후 결혼을 하고도 근무가 가능하도록 바뀌었고, 임신한 간호사가 걱정되신 원장님은 산전 3개월 산후 1개월 도합 4개월이라는 1992년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산전후 휴가를 제공하여 주셨다. 1987년 입사자들에게 주어진 엄청난 혜택이었다.

1992년 6월, 입사한 지 5년 만에 수간호사로 발령받았고, 이젠 굳이 사직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하였다.
1994년 시작하여 2012년까지 7층 다도실에서 진행했던 알코올 가족 모임은 내 삶의 방향과 철학을 갖도록 한 매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1995년 알코올 센터를 개소하며 알코올 병동 1대 수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당시 병동장이었던 성상경 선생님을 거쳐 김한오 선생님과 함께 알코올 센터의 프로그램들을 세팅하며 신나게 근무를 하였다.

1997년 이규항 이사장님이 국제로터리 3750지구 회장으로 계시던 시절, 운 좋게도 GSE(Group Study Echange) 멤버로 추천되어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한 달간 연수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때 경험한 미국에서의 경험들은 평생 가슴속에 두근거리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연수 중에 함께 갔던 안양샘병원 내과 수 선생님이 울었던 것을 내가 운 것으로 잘못 보고받으신 이규항 이사장님은 지금도 “그때 왜 울었니…?”하며 가끔 놀리듯 물으시곤 하신다. (“이사장님 저 안 울었어요!”)

2004년 1월 5일부터 2월 4일까지 미국 뉴욕 주에 있는 ‘Meadow run’이라는 마약 중독자들이 거주하는 시설에서 연수하며 ‘DAY TOP’ 치료 공동체에 관한 공부를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때, 우리나라보다 50여 년 앞서가고 있다는 미국의 중독자들을 위한 시설들을 견학하며, 우리나라 중독환자들에 대한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주말이면 뉴욕 시내로 나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도 보고, 나이아가라 폭포 등 가능한 주변 지역 여행도 하며 함께 했던 멤버들과 똘똘 뭉쳐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지냈던 추억 등등……. 남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2013년 간호과장으로 발령받아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 것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간호과를 이끌고 나가는 수 선생님들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권유하고, 정리되지 않았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며 하나하나 채워나가고자 하였다. 새로운 도전에 함께해 준 조정희 과장님, 백금화, 유지행, 조미경 수 선생님…. 덕분에 외롭지 않게 간호과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만들고자 했던 간호과 모습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입사 동기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2020년 간호 부장으로 일할 기회도 주셨고 2021년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많은 손길들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나의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던 계요병원 간호사로서의 삶은, 나에게는 에너지의 근원이었고 내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과정이었다. 남아있는 시간을 계요병원 발전과 성장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간호부서장으로서의 삶을 멋지게 살고 싶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