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노포를 좋아한다.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유행에 따라 사람들이 몰리는 곳 보다는 자연스럽고 편하게 즐길 수 있고 수더분하게 같이 간 동행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무슨 노포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나 '한 일을 오래 하는 곳은 이유가 있다'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한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씩은 새로운 시대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노포들도 그렇기에 오래 가지 않았을까 싶다.

전공의 시절에 정신과의 오래된 이론인 정신분석에 질렸었던 순간이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그 사람을 분석하는 학문인 정신분석을 배우다 보니 뭔가 현재의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뭔가 최신의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병원에서 뇌영상 공부를 했었다.

입원환자는 보지 않았고 뇌영상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왜 의사를 하려 했었나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의대에 진학하였는데 환자는 안 보고 모니터에 있는 MRI 영상들만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환자가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치료적 행위를 하는 것이 그리워지고 다시금 정신과 전문의로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옮길 병원을 물색했었다.

그러면서 계요병원을 소개받았고 오래된 정신과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된 곳은 뭔가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에 온 지 이제 1년 되어간다. 환자를 보지 않고 지내다가 갑자기 다시 하려고 하니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지 못했고 정신과 의사로서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병원서 근무하는 다른 분들을 보며 ‘아 이렇게 하는 것이지’ 다시금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환자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정신과 의사의 삶을 다시 느끼고 이를 통해 즐거움, 활력을 얻으며 이것이 나의 일임을 느낀다. 다양한 환자들을 보며 그들에게 맞는 대상으로 내 모습을 맞추며 정체성은 관계 속에서 변화하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나의 모습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모니터로만 환자들을 분석하는 것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노포처럼 오래된 곳은 오래갈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계요병원에서 생활하며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나 스스로 정신과 의사로서 더 많이 성숙할 수 있기를 바라며 거의 반백년의 역사를 가진 계요병원도 100년을 향해 오래가기를 바란다. 또한 너무나 오래가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해소되어 마스크 없이 좀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기를 기원해 본다.